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오드리 헵번 (문단 편집) == 여담 == * [[브뤼셀]]에서 태어나고 부유한 부모를 따라 어린 시절 유럽 각지에서 살아본데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기에 [[다중언어]] 화자였다.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네덜란드어]]를 모두 유창하게 구사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youtube(W52UZU2oLVg, height=280)]}}}|| * 오드리 헵번은 [[율 브리너]]와 절친이었고 율 브리너의 두번째 부인인 도리스 클레이너와도 죽을때까지 돈독한 사이였다. 또한, 라 파지블에서 멀지 않은 옆집에서 살았다고 한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tumblr_mxrunr0Yqk1qbilh4o2_540.jpg|width=100%]]}}}|| * [[로마의 휴일]]에서 보여준 [[담배]]를 처음 피워본 공주 이미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친구인 [[율 브리너]]와 함께 엄청난 [[골초]]로 유명했다.[* 당시는 남녀불문하고 흡연은 매우 흔한 행위였다.]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보여 준 [[http://web.archive.org/web/20190815041223/http://cfile23.uf.tistory.com/image/143E8F4B50063C2C3F12ED|긴 담배 파이프]]가 유명하며, 아직까지도 헵번 파이프라고 하면 통한다. 본격적인 파이프 흡연이 아닌, [[궐련]]을 끼워 피우는 형태. 흡연도 결장암을 일으키는 요인이다. 다만 독한 옛날 담배를 피웠음에도[* 당시 사람들이 피웠던 담배는 지금 사람들이 피는 담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독했다. 지금은 고타르 담배의 대명사가 된 미국산 [[말보로]] 레드는 처음 나왔을 때 만 해도 여성들을 주 광고 모델로 내세워서 순한 담배라고 홍보했었다.] 피부가 깨끗했다. * 담배 피우는 오드리 헵번의 모습이 2001년 [[우표]]에 담겨 발행된 적이 있는데, 오드리의 아들이 어머니가 담배를 피는 모습이 이미지가 좋지 않다고 하여 발행 중단을 요청, 중단되었고 판매된 것들은 전량회수되어 소각처리했다. 당연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가장 최근 낙찰가가 한화로 '''6억 7,000만원''' 정도였다. 1,400만장을 발행했으며 당시 폐기를 담당한 직원이 30장 가량 빼돌렸다는 소문이 있는데 몇 장 남아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며 잊을 만하면 경매에 나와주셔서 그 때마다 최고가를 경신한다. * 세기의 미녀로 평가받는 그녀지만 정작 헵번 본인은 외모 [[콤플렉스]]가 상당했다고 한다. 지인들에게 털어놓기를 "나는 피부가 좋지 않아 화장하지 않으면 볼품이 없고, 콧등도 매끄럽지 않다."라고 했다고 한다. 이러한 내용은 90년대에 EBS에서 방송된 세계의 명배우 다큐멘터리에서 생전 오드리 헵번과 절친했던 친구가 밝힌 것으로, 다큐멘터리의 원래 명칭은 '세기의 여성들 - 오드리 헵번 편.' * 오드리 헵번은 자신의 건강과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식단 관리와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느 사람들처럼 달콤한 디저트류를 좋아했다고 한다. 특히, [[초콜릿]]을 너무 좋아해서 다른 디저트류는 절제하더라도 초콜릿은 평소에 적당히 먹어주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 타협했다고 한다. 이 초콜릿 사랑에는 그의 자식들이 이야기한 비화가 있다. 헵번은 어린 시절 친가가 있던 [[영국]]에서 발레리나를 꿈꾸다, [[제2차 세계 대전]]이 확전 조짐을 보이자 [[네덜란드]]의 외가로 피신했는데, 이후 네덜란드가 나치 독일에게 점령당해 가혹한 지배와 탄압 하에 놓이면서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하여 몸무게가 39㎏까지 빠지고 거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 이 시절 너무나도 배고파서 흙을 파헤치고 벌레까지 씹어먹고 그야말로 먹을 수만 있다면 뭐든지 먹었다고 한다. 쓰레기도 뒤졌고 음식쓰레기라도 발견하면 얼마나 기뻤는지 몰랐으며 먹고 배탈나고 배가 아플 것을 잘 알고도 우선 배고픔부터 떨쳐버리고 싶었다고 진저리가 난다는 듯이 회고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 문화권이 뭘 먹던 우리 잣대로 뭐라고 하지 좀 말자, 배고파 보면 뭐든지 맛있다, 더불어 어디건 그 맛이라는 게 다르다고 여긴다고 했다. 그래서 [[개고기]]를 두고 한국을 욕하던 [[브리지트 바르도]]를 비판하기도 했다.] 거의 죽기 적전에 네덜란드 병사가 준 초콜릿을 먹고 간신히 [[아사]]를 모면했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때의 영양실조 후유증으로 생긴 그윽한 다크서클과 마른 몸매가 그의 미모를 가장 강력하게 어필하는 상징이 되었다. * 워낙 호리호리한 몸매 때문에 아담할 것이라는 오해를 많이 받지만 키가 170cm로 현대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장신이다. * 오드리 헵번은 매 역할마다 진지한 자세로 임했던 것으로 유명하다. <사브리나>를 찍을 때는 실제로 전문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웠고 <하오의 연정>을 찍을 때는 첼로 연주를 배워서 직접 첼로를 연주했다. <파계>를 찍을 때는 실제로 수녀 수업을 받으면서 영화를 촬영하다가 병원에 실려갔다고 한다. * [[사슴]]을 길렀다. 전 남편인 멜 퍼레어가 감독한 영화 그린 맨션 촬영때 만난 사슴인데, 이름은 핍핀이었다고. 간혹 트위터나 웹상에서 사슴과 함께 있는 흑백사진들을 볼 수 있다. * [[청록색|시안색]](cyan)을 좋아했다고 한다. * 오드리 헵번은 생전 인상깊은 영화로 히치콕 감독의 [[현기증(미국 영화)|현기증]]을 꼽았는데, 킴 노박의 이중인격 연기가 특히 뛰어났다며 극찬했다. 참고로 현기증은 흥행보증수표 [[제임스 스튜어트]]와 역사상 최고의 감독 중 하나인 [[앨프리드 히치콕|히치콕]]이 만나 기대를 모았으나 1958년 개봉 당시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폭망한 흥행 성적'''을 냈다. 지금은 재평가되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영화 중 하나'''로 평가받으므로 오드리 헵번이 영화를 보는 안목이 확실이 있었던 것을 증명하는 예시라 할 수 있겠다. 오드리 헵번은 현기증을 좋아한 나머지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 출연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히치콕 역시 오드리 헵번을 마음에 들어해서 오드리를 위해 <판사를 위한 보석금은 없다>라는 영화를 준비한다. 영화에서 오드리가 맡을 역은 법정 변호사로서 살인죄로 기소된 아버지를 변호하고 진짜 범인을 잡기 위해 범죄자를 고용하는 아주 매력적이고 용감한 변호사였다. 영화는 계획에 차질없이 제작에 들어갈 찰나였으나 후반부에 여주인공이 강간당하는 장면이 들어가있는 영화 대본을 보고 유산의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던 오드리 헵번은 "이런 장면이 들어가는 영화에는 출연할 수 없다."며 히치콕에게 항의했고 히치콕은 그 장면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고 고집했다. 결국 오드리 헵번은 최종적으로 출연을 고사했고 영화는 제작이 중단되었다. 히치콕은 해당 영화가 엎어져서 20만 달러의 손실을 겪었고 이후 "오드리 헵번은 무책임하고 배우로서 기본이 안된 여자"라는 등 주위 사람들에게 오드리 헵번을 비난하는 말을 했다고 한다. 영화가 엎어진 후 히치콕은 손실을 매꾸기 위해 TV 기술자들과 협업하며 저예산으로 영화 한 편을 만들게 되는데 이 영화가 바로 그 유명한 [[사이코(영화)|사이코]] 였다. * 영화 '아멜리에'로 유명한 [[프랑스]] 배우 [[오드리 토투]]도 부모님이 이 배우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 2013년 영국의 [[초콜릿]] 회사 갤럭시 초콜릿의 광고에 CG로 구현되어 등장했다. 실제로 다른 디저트는 안먹어도 초콜릿 만큼은 광적으로 좋아한 초콜릿 광이었으니 적절한 광고.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youtube(2DjSVrf8QLA, height=280)]}}}|| * 2013년 3월 7일에 방영된 [[순간포착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는 헵번의 열렬한 팬이 등장했다. 심지어 이 양반은 '''스스로 헵번의 피규어까지 만드는''' 흠좀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https://blog.naver.com/jood/20181838147|그팬의 블로그]] 또한 이 팬은 2015년 추석 연휴 마지막 날, MBC에서 방송된 [[능력자들]]이라는 특집프로그램에도 한국인 중 오드리 헵번 덕후로 출연하였다. 그리고 해당 프로그램에서 둘째 아들과의 SNS 인맥을 과시함과 동시에 오드리 헵번의 첫째 아들이 직접 출연하였다. * 2014년 5월 4일 [[구글]]에서 오드리 헵번의 탄생 85주년을 기념하는 [[구글 두들|기념일 로고]]를 제작했다. [[http://www.google.com/doodles/audrey-hepburns-85th-birthday|#]] || {{{#!wiki style="margin: -5px -10px -6px" [[파일:attachment/오드리 헵번/Hepburn_doodle.jpg|width=100%]]}}}|| * 2014년 11월 29일부터 2015년 3월 8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오드리 헵번의 생애 전체를 보여주는 전시회가 열렸다. 헵번의 둘째 아들로 오드리 헵번 어린이재단 회장을 맡고 있는 루카 도티가 주관하여 헵번이 출연한 영화의 소품과 의상, 집에서 쓰던 물품 등을 전시했다고 한다. * 2017년 9월 27일 오드리 헵번의 생전 애장품들이 경매에 나왔다. 그 중 '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대본이 있었는데 할리우드 대본 역사상 가장 높은 가격인 632,750 파운드(9억 8,000만원)에 낙찰되어 신기록을 세웠다. 이날 경매에서 팔린 헵번의 소장품들 총 판매액은 약 71억원이었다고 한다. * 2020년 오드리 헵번을 기념하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되었다. [[http://naver.me/Ggey2uyN|설명]] [[https://youtu.be/KwqedPDHrv8|예고편]] * [[앙드레 김]]은 오드리 헵번이 나오는 영화를 보고 '어떻게 영화 내내 옷차림이 수차례 바뀌냐[* 당시 어려운 상황이었던 우리나라에선 멋으로 옷을 여러 개 입는다는 건 매우 익숙치 않은 일이었다], 서양사람들은 옷이 많아 저렇게 그때그때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구나'하고 충격을 받았고, 이는 패션 디자이너로서의 삶으로 가게 된 하나의 계기라고 한다. *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의 [[개고기]] 식문화를 비난하자 오드리 헵번은 '''"개고기? 전쟁 터지면 그보다 [[음식물 쓰레기|더한 것도 먹게 된다.]] 당신도 [[제2차 세계대전|그 전쟁]] 경험 안 해봤냐?"'''라고 비판을 한 적도 있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1934년생이라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무렵에는 당시 헵번보다 여동생 뻘 되는 어린이였고, 집안도 매우 부유한 부잣집 가정에서 태어나는 등 오드리 헵번 같은 고생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오드리 헵번은 어렸을 때 2차 세계대전을 겪었고 피난민 생활을 하면서 먹을 게 너무 없어서 숲에서 [[튤립]]의 구근까지 캐먹어야 했고 전쟁터의 빈 집에서 '''남기고 간''' 소시지, 베이컨, 햄, 치즈, 돼지고기, 닭고기, 쇠고기 같은 식재료들까지 닥치는대로 먹었을 정도였다. 당연히 냉장고도 없던 시절이니 그 식재료도 상하거나 곰팡이들이 생긴 썩은 것들이 많았지만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서 그거라도 먹다가 복통과 설사로 심한 고생을 해야만 했다. 원래부터 건강한 몸도 아니었던데다 먹을 게 없어도 너무 없어서 온갖 갖은 고생을 다하면서 영양실조로 인한 합병증에 시달렸다. 종전 이후 영국으로 돌아왔을 무렵 전쟁난민 지원모금을 위한 홍보 포스터의 모델이 될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고 한다. * [[마이클 잭슨]]과 더불어 인도주의적인 가치를 설파한 스타로 유명하다. * [[안네 프랑크]]와 여러모로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기도 하다. 둘 다 1929년 생 동갑내기였고, 오드리 헵번은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에 발레 수업을 받기 위해 [[암스테르담]]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실제로 [[암스테르담]] 내 오드리 헵번의 거주지와 안네의 거주지가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고 한다. [[안네 프랑크]] 살아 생전에는 안네에 대한 존재를 알지 못했지만, 나중에 오드리는 종전 이후 [[안네의 일기]]가 출판되자 여러모로 자신과 안네가 공통점이 많다는 걸 알게 되면서 내용을 거의 외우다 싶을 정도로 읽었다고 한다. 또한 안네의 존재를 알게되면서 자기는 유대인이 아니라 결국 살아남았다는 의식에 죄책감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전쟁 중에는 [[아른험]]에 거주하고 있었지만, 이때도 주변에서 유대인들이 끌려가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훗날 [[안네의 일기]]가 영화화되었을 때 영화 제작진 측에서는 헵번을 캐스팅하려고 했지만 전쟁으로 인한 트라우마와 죄책감[* 전술했듯 아버지가 파시스트였던 것도 영향이 있었다.]때문에 캐스팅을 거절했다고 한다. * [[기동전사 건담 UC]]에서 [[오드리 번]]의 가명은 이 배우로부터 따왔다. 버나지가 이름이 뭐냐고 묻자 주변을 잠시 둘러보다가 극장에 걸린 '가출한 공주(Runaway Princess)'(로마의 휴일을 그대로 쓰면 저작권 문제가 있으니 적당히 이름을 바꾼 것. 포스터는 로마의 휴일 그대로다.)에서 배우들 이름을 보다가 '오드리 번'이라고 대답한 것. * [[신기동전기 건담 W]]의 [[리리나 도리안]]의 모델. 특히 퀸 리리나의 모습은 의상부터 악세사리까지 [[로마의 휴일]]의 앤 공주와 판박이. * [[디즈니 애니메이션]] [[미녀와 야수(애니메이션)|미녀와 야수]]의 [[벨(디즈니 캐릭터)|벨]]의 실제 [[실제 인물이 모티브가 된 캐릭터|모델]]이기도 하다. * [[포켓몬스터 X·Y]]의 챔피언 [[카르네(포켓몬스터)|카르네]]의 [[실제 인물이 모티브가 된 캐릭터|모티브]]가 되기도 했다. *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 애완동물 대전이 등장하면서 추가된 애완동물 조련사 npc 중 '오드리 '''번헵''''[* 영문명도 똑같은 Audrey Burnhep.]이라는 인물이 있다. [[스톰윈드]]에서 애완동물 대전 입문 퀘스트를 주고 있다. * [[이나영]]이 1999년 방영된 MBC 베스트극장 '굿바이, 오드리 헵번'에서 오드리 헵번을 닮은 배우 지망생으로 출연한다. 그리고 라네즈 cf에서도 오드리 헵번으로 분장하고 나온다. * 한국 영화 [[수상한 그녀]]에 주인공 젊어진 오말순([[심은경]]이 연기)이 이름을 오드리 헵번을 따서 ''' '오두리' '''라고 하며 스타일도 노골적으로 [[오마주]]한다. 인상깊은 대사로는 "오드리 헵번이 죽어버렸어?" * [[미국 드라마]] [[가십걸]]의 주인공 [[블레어 월더프]]가 헵번의 영화를 매우 좋아하는 설정으로, 꿈 속에서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오프닝과 [[마이 페어 레이디]] 의상등을 재연하기도 했다. * 한국에서의 전담 성우는 80년대까지는 [[장유진]], 90년대부터는 [[정미숙]]. MBC 초창기에는 당시 인기 성우 [[정소희(MBC 성우)|정소희]]가 맡았지만 교통사고로 요절했다. * [[러브 라이브!]] [[니지가사키 학원 스쿨 아이돌 동호회]]의 [[오사카 시즈쿠]]의 두 번째 싱글곡 [[オードリー]]는 제목 그대로 오드리 헵번을 동경하는 시즈쿠의 마음을 노래한 곡이다. * [[서울]] [[역삼동]]에 오드리 헵번의 [[카페]]가 오픈했었다. 관련재단과 협의하에 만들어진 공식적인 카페다.[[https://www.news1.kr/articles/?1294966|실제 모습]] [[분류:영국 여배우]][[분류:영국의 영화 배우]][[분류:영국의 사회운동가]][[분류:1929년 출생]][[분류:1993년 사망]][[분류:1948년 데뷔]][[분류:1989년 은퇴]][[분류:브뤼셀 출신 인물]][[분류:대장암으로 죽은 인물]][[분류:할리우드 명예의 거리 입성자]][[분류:독일계 영국인]][[분류:네덜란드계 영국인]][[분류:벨기에계 영국인]][[분류:영국의 무종교인]][[분류: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자]][[분류:EGOT 달성자]][[분류:미국 대통령 자유 훈장]]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